혜민 스님과 무소유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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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 스님과 무소유에 대해서

월리만세 2020. 12. 3.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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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며 : 

 

제가 혜민 스님을 알게 된 것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란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명상 앱 <코끼리>를 구매하고 좀 더 자주 혜민 스님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저에게는 이미지가 매우 좋은 편이었는데, 최근 스님답지 않은 행동과 재산 논란으로 마음이 혼란스럽고 안타깝습니다. 그분이 실제 어떤 사람인지 뉴스 기사나 댓글로만 보아서는 알 수 없지만, 스신 책의 내용이나 명상 앱에서 말한 내용들까지 진심이 아닌 상업적인 멘트였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어찌 되었든, 불교계에 몸 담고 있으면서 부와 명예를 좇는 모습으로 비치고 있어 이 분이 하셨던 말씀이나 사회적으로 행동했던 것에 대한 진실성이 의심되고 있습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지금까지 있었던 논란에 대해 정리해 보고 불교에서 말하는 무소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도움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1. 혜민 스님의 풀소유

 

혜민 스님은 1974년생으로 대전에서 출생해 미국으로 이민 간 케이스입니다. 국적은 미국입니다. 

 

학력은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종교학 학사를 거쳐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종교학 석사를 마치고, 프린스턴대학교 대학원 종교학 박사를 수료했습니다. 원래 버클리로 영화를 공부하러 떠났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민을 간 것은 이유가 있었겠지만, 학력으로 보면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대학교 이름이 가득합니다. 버클리, 프린스턴, 하버드 등 모두 유명한 대학의 이름들입니다. 공부를 잘했거나 머리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학사기록이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라고 되어 있어서 우리가 아는 UC버클리인지 확인해 보니 맞네요.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에 있는 주립 종합대학교로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명문 대학이다.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중부의 교육 도시 버클리에 있는 주립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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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 스님은 일찍부터 트위터를 많이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 살이에 고국이 그리워 트위터를 시작했는데 오히려 SNS에 올린 글들이 유명세를 먼저 탔던 것입니다. 

 

2012년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습니다. 13개월 만에 200만 부 판매를 돌파했는데 비소설단행본 중 최단기간 200만부 돌파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책은 저도 읽어 보았지만, 종교적인 깊이나 철학적인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아주 쉽게 읽히는 수필 같은 느낌입니다. 시기적으로 위로가 필요했던 우리나라 사회 분위기와 맞아떨어지면서 유명해진 것 같습니다. 

 

2015년에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생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신기한 것은 이 분이 승려가 맞는지입니다. 기록에는 2008년 조계종 승려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 이후 12년간 한 번도 '안거 수행'을 한 적이 없다고 하니까요.

 

안거 수행은 승려들이 하는 대표적인 수행방법으로 여름, 겨울 동안 각각 3개월씩 외부 출입을 끊고 참선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가장 이상했습니다. 승려인데 참선 수련을 하지 않고 어떻게 정신적인 깊이를 쌓을 수 있었는지 궁금했고, 불교라는 조직은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참선수련을 하지 않아도 승려임을 인정해 주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물론 불교는 종교단체니까 회사 조직과 다르겠지만, 회사에서는 어떤 자격을 유지하려면 정기적으로 자격시험을 통과해서 스스로를 증명을 해야 하니까요. 

 

 

이 부분을 알고 나니, 혜민 스님이 쓰신 책들이 조금은 의심스러운 부분이 보입니다. 네이버에 검색해 보면 총 14권의 책이 있는데, 유명세를 탔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혜민 스님의 따뜻한 응원>,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등의 책에 대한 재출판이었고, 내용은 아주 가볍고 철학적인 깊이는 느낄 수 없는 수준으로 작성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읽는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고민하여 작업을 한 것인지, 실제 본인이 참선을 통해 불교에 대한 깨달음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에 깊이 있는 내용을 작성할 수 없었던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혜민 스님은 확실히 다른 스님들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서적 편찬도 많이 하고, 유료 명상 앱 개발도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남산이 보이는 집에서 살고, 맥북이나 아이맥을 능숙하게 다루고, 집에서는 인공지능 카카오 스피커를 통해 명상 앱으로 명상을 합니다.

 

이에 대해 현각 스님이 "스님을 가장한 사업가, 연예인, 기생충"이라고 비난할 만합니다. 현각 스님도 학력이 높은 외국인 승려로 유명했었는데, 한국 불교의 폐단을 보시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신 분입니다. 아마도 순수하지 못한 종교생활을 하지 않는 혜민 스님을 보고 분노를 했던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하루 만에 입장을 번복한 것인데, 혜민 스님과 70분에 걸쳐 장시간 통화를 했다고는 하지만 너무 빨리 입장 변화가 있어서 놀랐습니다. 어떻게 본인에 대한 오해를 풀었는지 모르겠지만, 혜민 스님의 말주변이 좋거나, 현각 스님이 언론에 표현된 과격한 언사를 한 것과는 다르게 매우 순수하고 단순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한동안 자숙의 시간을 갖겠다고 하니, 실제로 참선에 참여해서 수행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드러난 내용만 보면 승려라기보다는 벤처 사업가와 비슷한 생활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 분의 사고방식을 잠시 엿볼 수 있는 사례가 있어서 소개드립니다. 

 

2011년 트윗으로 돈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밝힌 부분이 있습니다. 법정스님과 비교를 해서 오히려 이미지가 나빠지지 않았나 싶지만, 이 분은 처음부터 돈에 대한 개념이 일반 승려와 달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혜민스님 트위터)

 

 

인세로 받은 돈을 모두 기부해서 본인 치료비를 댈 수 없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았던 법정 스님에게 인세로 인한 부의 축적에 대해 설명한 것은 잘못된 비유였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지금 욕을 먹고 있죠. 어느 정도 베풀 능력이 되어야 무소유가 가능하다는 말도 사실 어떤 의미로 이야기했는지 이해는 가지 않습니다.

 

저의 짧은 생각으로 해석한다면, 부가 어느정도 쌓여 있어야 마음 편하게 겉으로는 무소유도 실천할 수 있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씀하신 게 아닌가 싶은데.. 맞는 해석인지 모르겠습니다.  

 

혜민 스님 인터뷰에서 본인도 '소년소녀가장도 돕고, 명상센터도 세우고 싶다'라고 했지만, 다른 한편 남동생이 있고, 부모님이 계시는데 조금 도와드릴 수 있어 행복하다고 한 것으로 보아 출가를 했지만, 아직 속세에 대한 인연을 끊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2012년 트윗으로 맞벌이 주부에 대한 이야기를 잘못했다가 뭇매를 맞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유독 엄마에게 새벽에 일어나 아이와 놀아주라는 말에, 엄마들이 많이 반발을 했는데 상대방에 대한 입장을 고려하지 못한 트윗이라는 비난이 많았습니다. 

 

 

(혜민스님 트위터)

 

 

저는 이 트윗을 보면서, 아기를 키워본 적이 없는 스님 입장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다 보면 이 분처럼 상대방 입장을 잘 이해하는 분도 드물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이 또한 수행의 깊이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또 하나, 왜 6시부터 45분간 놀아주라고 했을까 의문입니다. 45분? 무슨 의미로 시간을 40분도 아니고 50분도 아닌 45분이라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본인의 섬세함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법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맞는지 틀리는지는 본인만이 알 듯합니다. 

 

 

얼마 전에는 2011년 미국 브루클린에 있는 리버뷰 아파트를 구매했다는 의혹 기사가 실렸습니다. 남산 뷰의 집도 있고, 미국에 아파트도 구매하는 것으로 보아 이 분은 일단 재물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해명 기사에서 창피하고 조용히 살겠다고 하시는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인정을 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이라면 명상 앱을 만들고, 서적을 편찬한 인세로 본인의 욕심을 채웠다는 것이 맞는 듯합니다.

 

신문 기자들이 이 분에 대해서는 파면 팔수록 무언가 계속 나오니까 정기적으로 계속 기사가 터지는 것 같습니다. 혜민 스님에 대해서는 조만간 밑바닥까지 드러나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 기사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진위여부를 떠나서 실제 청빈하게 생활했던 스님이었다면 이런 의심은 불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스님으로 출가하면 속세의 모든 것과 인연을 끊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나 봅니다. 

 

이번 사건으로 혜민 스님 모습은 한동안 볼 수 없지 않을까 합니다. 너무 적나라하게 본인의 사생활이 언론에 노출되어 이미지를 회복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까 합니다. 앞으로 기존에 했던 것과 동일하게 서적 출판과 수익활동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완전히 불교에 귀의하여 진심으로 참선을 하여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이런 분들에 대해 성철 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진짜 큰 도둑은 성인 체하는 사람입니다."

나라를 훔치는 도둑보다 더 큰 도둑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물건이나 나라를 훔치는 도둑은 흔적이 남기 때문에 죄가 밝혀지게 됩니다. 하지만 종교계에서 자신이 이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다고 떠벌이는 사람은 아무런 혐의점을 남기지 않는 지능적인 도둑인 것입니다. 이런 자는 실제로 부와 명예와 온갖 권력을 다 소유하고 있습니다. 성인으로 자처하는 사람은 몸소 실천으로써 답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2. 불교에서 말하는 무소유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바로 법정 스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하다고 하셨죠.  

 

평생 동안 가난을 벗 삼아 살다가신 성철 스님을 보면 저절로 '청빈'의 의미를 되시기게 됩니다. 그냥 못 먹고 헐벗은 것이 아니라 의식주 그 자체에 대한 욕심이 없는 상태에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가난이요, 그야말로 '청빈' 그 자체였으니까요. 

 

법정 스님과 성철 스님은 청빈함을 평생 지키셨던 스님들로 유명합니다. 이런 분들이야말로 '무소유'라는 것을 화두로 삼으실 수 있는 자격이 있을 것입니다.  

 

청빈은 그저 맑은 가난이 아니라,  그 원뜻은 나눠 가진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청빈의 상대 개념은 '부'가 아니라 '탐욕'입니다. 그렇게 보면, 혜민 스님은 '부'를 추구했던 것이 아니라 '탐욕'을 추구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나눔으로 실천하셨습니다. 스님은 책을 써서 많은 인세를 얻었습니다. 소유욕이 있었다면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법정 스님은 그 부를,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모두 주었습니다. 스님이 떠난 자리에는 평소에 아끼던 '어린 왕자'와 같은 순수를 깨우쳐 주는 책 외에는 다른 유산이 없었다고 합니다. 무소유는 '채워진 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어서 비우는 것임'을 스님은 깨우쳐 주었습니다. 

 

법정 스님께서는 늘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다. 나는 나 답게 살고 싶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분에 대해 혜민 스님이 법정 스님의 인세에 대해 평하다니 씁쓸한 일입니다.  

 

성철 스님 말씀으로는 '욕심' 때문에 인간이 진리의 본모습을 볼 수 없다고 했는데 과연 불교에서 말하는 '욕심'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대체로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전반을 뜻합니다. 인간의 다섯 가지 욕망인데 재욕, 식욕, 성욕, 명예욕, 수면욕 등이 오욕입니다. 

 

이렇게 다섯 가지를 욕심으로 정의하는데, 혜민 스님은 이 중에서 몇 가지의 욕심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요?

 

 

다시 성철 스님의 말씀을 전달해 드립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인간 삶의 원천은 바로 '밥'입니다. 그런데 요즘 사회는 '금강산' 구경을 하기 위해서 배를 든든히 하는 것이 아니라, 배를 든든히 채우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원래 인간에게는 저마다 삶의 숭고한 목적이 있습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밥을 먹는 것이지, 밥 그 자체를 먹기 위해 살고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진정으로 밥에 먹히지 않고 밥을 먹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밥' 때문에 '금강산'을 망각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야말로 성철 스님이 바라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좋은 비유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여러 스님들을 봅니다만, 밥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과 금강산을 보기 위해 활동하는 스님은 구분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특히 마음을 강조하고 또 마음을 바로 잡는 것을 중요시합니다. 대체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은 어떤 것이길래 성철 스님은 마음 눈을 뜨면 현실이 극락이라고 했을까요? 이것을 알려면 선을 이해해야 할 듯합니다. 

 

한마디로 선은 '마음을 닦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선'을 이해하지 못하면 불교 중에서도 특히 '선'을 강조한 선종 계열의 성철 스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힘들 것입니다. 

 

마음의 눈을 뜨면 현실이 극락이라고 합니다.  

 

투철한 참선 끝에 얻어진 깨달음은 이 세상은 본래 극락이라는 사실일 것입니다. 이 사실을 지식이 아닌 체험으로 알려면, 우리 모두 바쁜 세상의 쳇바퀴에서 떨어져 나와 화두를 붙들고 참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참선을 한 번도 참석한 적이 없다고 하는 혜민 스님은 불교에 몸 담고 있는 스님으로서 해탈과 열반을 위한 깨달음을 위해 노력한 적이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인과 법칙, 연기설이 기본 철학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연기는 인과법, 인연법, 연생 연멸의 법칙이라고도 불립니다. 부처님은 이 연기의 법칙이 당신이 만든 것도 아니며,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든 나오지 않든 간에 진리로서 변함없는 것으로 다만 당신이 이 진리를 깨달았을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연기법을 세계와 인간에 대한 불변의 진라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만사가 인과 법칙을 벗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으니 무슨 결과든지 그 원인에 정비례합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밭 나는 것이 우주의 원칙입니다. 나의 모든 결과는 모두 나의 노력 여하에 따라 결과를 맺는다고 보는 것입니다. 

 

슬프게도 혜민 스님도 이 연기법을 피해가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본인이 했던 모순된 일들이 겹치면서 지금 그 결과가 좋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결과든지 그 원인에 정비례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3. 내가 생각하는 불교

 

저는 불교 신자가 아닙니다. 

 

불교는 단지 생활 철학이나 마음이 번잡할 때 조용히 생각을 정리할 때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불교 내용보다는 좀 쉬운 내용들을 좋아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불교의 말씀 중에는 '현재'에 충실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나간 것을 쫒아가지 마라. 오지 않는 것을 바라지 말라.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현재도 잘 관찰해 보면 순간순간 변해가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를 살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이다. 내 삶에서 절정의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이다. 내 생애에서 가장 귀중한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 '지금 여기'이다. 어제는 지난 간 오늘이요, 내일은 다가오는 오늘이다. 그러므로 '오늘'은 하루하루 이 삶의 전부로 느끼며 살아야 한다.

 

저는 이렇게 마음을 어지럽히는 걱정들을 없애주고 생각을 다잡을 수 있는 구절들이 좋습니다.

 

 

무소유와 관련된 구절 중 가난이나 청빈, 진리를 구하는 자세 등은 저에게는 무리입니다. 와이프와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무소유를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괴로움을 탈피하기 위해 열반과 해탈을 추구하는 불교의 기본적인 철학은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 열반과 해탈이 멀리 있지 않고 내 안에 있다는 표현도 좋습니다. 더구나, 깨닫는 즉시 모든 괴로움이 사라진다고 하는 즉시성도 불교를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모든 불교 이론의 핵심은, 바로 '나의 마음'에 모든 답이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때문에 제 마음을 수행하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이에 대한 좋든 글귀나 말씀들도 많구요. 

 

그래서, 마음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혜민 스님의 명상 앱인 '코끼리'를 구입해서 매일 듣고 명상을 했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효과를 보았기 때문에 상당히 좋아하는 콘텐츠였는데, 앞으로 같은 마음으로 그 앱을 사용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사실, 이 분에 대해 신문기사를 자주 보게 되면서 코끼리 앱 사용을 중단한 상태거든요. 그냥 단순한 명상 도구로 생각하면 사용하는데 큰 지장이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선입관이라는 것이 정말 대단한지 이 분 목소리를 들으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들 것 같아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종교에 몸 담은 분들은 이미지 관리가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더더욱 몸가짐에 잘못됨이 없어야 하는데, 이번에 좋은 사례를 보게 된 듯 합니다. 

 

 


 

정리하며, 

 

오늘은 혜민 스님에 대한 여러 가지 논란에 대해 정리를 하고, 불교에서 말하는 무소유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 분이 다시 사회에 복귀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워낙 바닥까지 드러나도록 기사화가 되어 이미지를 복구하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누가 이제 이 분을 믿을 수 있을까요? 

 

불교는 종교적인 면도 있지만, 저는 생활 철학이나 삶의 방향 제시 같은 부분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가볍게 명상하는 방법과 삶의 방향성을 알려주는 코끼리 앱을 좋아했던 것인데 안타깝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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