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 특히 한국사회에서 살면서 다른 사람의 평가에서 자유롭기란 매우 힘듭니다. 어느 조직에 속하든지 평가를 하고 그에 맞게 무언가 차등을 주니까요. 사실 우리는 거의 이런 것을 자연스러울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 사회 전체가 평가와 나래비에 익숙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깃털처럼 가볍게 살기라는 책을 읽고 그 책에 나온 내용을 조금씩 인용해서 다른 사람의 평가에서 자유롭게 사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평가는 듣고 흘려보내면 된다.
일본에서는 몇십 년 전부터 유행하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해님이 보고 계셔”
사실 이 말은 예전부터 일본인의 행동을 규정해 왔다고 합니다. 해님이 보고 계시니 이런 행동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보고 계신 해님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야 한다. 게으름을 피우면 보고 계신 해님에게 면목이 없다는 이야기죠,
우리나라 표현으로 바꾸어 본다면, 하늘이 두렵지 않으냐?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아는데 네가 이럴 수 있느냐? 대강 이른 뉘앙스가 아닐까 합니다.
해님은 물론 태양을 뜻합니다. 그러나 그뿐 아니라 대우주의 진리, 도리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조금 더 우리 몸에 와닿는 말로 하자면, 안에 있는 ‘양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할 때이건 의식해야 할 것은 남이 제멋대로 내린 평가가 아니라, 해님의 시선, 다시 말해 나의 양심에 부합하는가를 따지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가 아니라, 해님이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을지, 양심에 어긋나는 데는 없을지를 늘 질문해 가는 것입니다.
그런 자세를 생각날 때마다 확실히 다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평가는 저 멀리 뒷전으로 밀려나며, 차분하고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평가는 듣고 흘려버리면 된다
무슨 일을 하든지 반드시 따르는 것이 평가입니다. 학창 시절에는 시험 성적으로 평가를 받고, 직장에서는 성과로 평가를 받지요. 세상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 자기의 평가에 민감한 것도 이해는 됩니다.
벌써 한 회사를 20년째 다니면서 매 6개월마다 평가를 받은 저로서는 매우 익숙한 환경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그 평가라는 것은 ‘남’이 ‘제멋대로’ 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평가는 평가를 하는 환경과 평가를 누가 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그 말은, 내가 매년 똑같은 자세와 방식으로 일을 한다고 해도, 평가를 내리는 상사와 내가 속한 조직이 어디냐에 따라 매번 평가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평가를 받은 입장에서 이것을 공정하다고 느낄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평가는 언제나 공정하지 않습니다. 내가 좋은 평가를 받으면 공정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공정한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평가기준은 매번 바뀌고, 평가기준도 사람에 따라 매번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장 가까운 예를 들자면, 행복하게 연애를 하던 중에는 ‘멋진 사람’이었던 상대가, 관계가 틀어지기 무섭게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평가란 그 정도가 ‘모호’ 한 것입니다.
그런 평가에 우리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요?
그 평가를 받고 내가 죽을 정도의 심각한 피해를 입지 않는다면, 결국 명성과 돈의 문제일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을 사는데 핵심적인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물론, 내가 스스로 노력했다고 자부하는 만큼 대가를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억울하겠지만, 내 생명을 앗아갈 만큼 심각한 피해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 점을 명심합시다.
저도 20년 회사생활에 건강을 위협하는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지나보지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를 느낍니다.
2.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 말은 책을 읽으면서 많이 보지 않았을까 합니다.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은 어떻게 보면 식상할 수 있습니다. 저도 아직까지 삶의 주인공으로 살고 있냐고 묻는 등의 질문을 받으면, 화가 납니다.
인생에 한 번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으니까요.
언제나 내 노력으로 다른 사람이 빛을 보고 언제나 피해를 본 것만 같은 그런 느낌, 한번도 주인공이 된 적이 없었던 기억들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주인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주인공이 아닙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주인공'은 선어입니다. 또한 그 뜻이 일반의 이해와는 다릅니다.
중국 당나라 시대에 서암 사언이라는 선승이 있었습니다. 서암 선사는 매일같이 스스로 문답을 했습니다. 자기에게 “주인공(으로 있는가)?” 하고 묻고는 스스로 “네.” 하고 답했던 것입니다.
여기서의 주인공은 중심적 존재라는 뜻이 아닙니다. ‘본래의(진실한) 자기’, ‘자기 안에 있는 불성을 깨달은 자기’가 주인공의 뜻입니다. 현대적으로 말하자면 계산이나 타산, 거짓 따위에서 벗어난 청아한 자기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때문에 선에서 말하는 주인공은 중심적 존재라는 자리가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나, 설령 조연이건 단역이건 그곳에서 계산이나 타산, 거짓으로부터 벗어난 자기를 다하고 있다면 누구나 주인공이라는 것입니다. \
이 표현은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주인공이란, 계산이나 이해타산, 거짓에서 벗어난 청아한 본인이라고 합니다. 매일 정말 주인공처럼, 주인공에 가깝게 살려고 노력한다면 어떨까요?
다른 사람의 평가에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매우 어렵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좋은 해결방법일 수 있습니다. 평가란 결국 다른 사람에 의해 발생하는 제멋대로의 의사결정이므로, 나만의 고고한 평가기준에 맞춰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3. 내가 살아가는 하루하루
우리는 학생일 수도 있고, 회사원일 수도 있고, 자영업자일 수도 있습니다.
모두 본인과 유사한 카테고리에서 서로 비교를 하고, 평가를 받으면 살고 있을 것입니다. 그 평가에서 자유롭게 되는 길은 평가결과를 무시하고, 나만의 고고한 기준으로 살자는 것이 핵심입니다.
어떠신가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불교의 고고한 기준을 바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수행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제가 회사생활을 하면서 다양하게 아픈 기억을 되새겨보니 죽을 정도의 피해가 아니라 돈의 문제라면, 쿨하게 무시를 하도록 노력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목숨은 굉장히 귀한데, 그 평가 때문에 쉽게 목숨을 버리는 일들이 생기기도 하지 않습니까? 어떤 일들이 본인의 목숨과 본인의 건강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막상 그 상황에 닥쳐서는 쉽게 회피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생명과 건강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바로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고 있는가'라는 화두에는 못 미치지만, 하루하루 살면서 나의 생명의 소중함과 이해타산적이지 않고 진실하게 하루를 살았는가만 염두에 두고 살아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인생은 별것 아니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나만의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스스로의 기준에 의해 사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된다면 우리는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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