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종 시대의 삼정문란에 대하여

역사와 고전

철종 시대의 삼정문란에 대하여

월리만세 2021. 2. 20.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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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며 : 

 

아내와 딸이 신혜선이 출연하는 '철인왕후'를 보는 바람에 책장에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철종실록을 꺼내서 읽게 되었습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이제 중학생이 된 딸이 드라마를 보면서 역사에 대해 관심이 생겼는지 질문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철종의 출생이라든지, 어떻게 왕이 된 것인지 설명해 달라는 등 평상시에 하지 않던 질문을 하는 바람에 대답하기가 궁색해져서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아빠가 돼서 딸 질문에 대답을 못하는 것이 창피했거든요. 

 

철종실록을 읽다 보니 예전 고등학교 국사시간에 배우던 삼정문란과 동학운동 등에 대한 내용이 나와서 반가웠습니다.  그래서, 잊지 않기 위해서 이 부분에 대해 짧게 정리를 하려고 합니다. 

 

관련된 내용이 필요하신 분은 참고하세요. 

 

참, 저도 이번에 알게 되었는데, 영화 '군도'의 배경이 바로 철종 시대 민란을 배경으로 한 영화라고 하네요. 

 

 

1. 삼정의 문란

 

삼정이란, 전정, 군정, 환정을 의미합니다.

 

전정은 예전부터 부과해 온 토지세입니다. 대동법 시행 후 추가된 대동미와 기타 명목의 잡비가 토지세로 추가되었습니다. 여기서 기타 명목의 잡비란 바로 공덕비나 서원의 경비를 의미합니다. 당시에는 이 잡비가 기본세보다 많았다고 하니 일반 백성의 부담이 엄청났었습니다. 

 

군정은 군역을 말하는데, 16세부터 60세까지 양인 남자는 군역의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농사를 짓기 때문에 이 군역을 면제 받기 위해서 군포를 납부했는데, 이 군포를 탐관오리들이 악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동법 실시 후 휴경지와 면세자의 확대로 나라 관원들이 세수부족에 직면해 이를 군포 과다 징수로 해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군포 징수의 폐단을 막고자 영조가 균역법을 실시해 군포를 양반도 부담하게 하고 모두 1 필씩 균등하게 배분하는 제도를 시행했지만, 이웃에게서 대신 거두는 인징, 친척에게서 대신 거두는 족징, 어린아이에게서 거두는 황구첨정, 죽은 이에게서 거두는 백골징포 등 갖가지 명목으로 백성에게 부담을 지우게 되었습니다. 

 

환정은 환곡 제도를 의미합니다. 이는 백성을 돕는 구호기구인데, 이자 없이 곡식을 빌려주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지방 아전들은 강제로 곡식을 백성들에게 빌려주고, 높은 이자를 매겨 되돌려 받는 수탈 제도로 활용했던 것입니다.

 

특히, 조선 후기 관직을 매관매직하게 되면서 이 삼정이 더욱 문란하게 되었습니다. 

 

돈을 주고 관직을 샀으니, 지방 수령들은 관직을 유지하면서 어떻게든 본전을 찾으려고 했고, 이를 눈치챈 아전, 토호들이 합세하여 백성들을 수탈해 갔습니다. 

 

전정, 군정은 대표적인 세금제도였고, 환정은 대표적인 백성 구호 제도였는데, 이를 모두 백성을 수탈해 가는 방법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정부가 약해지고, 공무원들의 부정부패가 심해지면 국민이 들고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조선시대 철종 13년에도 삼정 문란으로 인해 결국 민란이 터지게 됩니다. 

 

 

2. 진주민란과 민란의 확산

 

철종 13년 진주에 경상 우병사 백낙신은 병영의 경비를 착복하고, 부족한 부분을 백성들에게서 거둬 충당하려고 했습니다. 이웃에게서 거두고, 친척들에게도 거두고, 사족, 부호들에게도 거두었습니다.

 

이에 몰락한 양반과 초군이 앞장서서 집회를 열었는데, 엄청난 수의 군중이 모이면서 기세가 높아져 악질 토호의 집을 습격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초군이란 땔감과 약초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백성들이었습니다. 

 

결국, 우병사 백낙신을 백성들이 잡아 가두고, 아전들을 불에 태우는 등 10여 일간 민란이 지속되었습니다. 그 결과 백난신은 고금도에 유배를 가고 난을 일으킨 주동자는 참수당했습니다. 

 

그러나, 진주민란이 기폭제가 되어 전국에 민란이 확산되었습니다. 

 

경상도 성주에서 민란이 일어나 토호의 집 수집채를 파괴했고, 개령에서는 옥문을 부수었고, 현감을 욕보이고, 악덕 토호 셋을 불태워 죽였습니다. 전라도 익산에서는 군수를 붙잡아 능욕을 가하고, 함평에서도 관아로 몰려가 현감을 욕보이고 토호의 집을 불태웠습니다. 충청도 은진에서 봉기한 백성들은 여산까지 몰려가 양반집을 불태웠습니다. 

 

이렇게 3개월간 삼남 일대는 민란에 휩싸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배세력들은 크게 충격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전국적인 민란이었지만, 고을과 고을이 연계하여 통일적으로 묶어 움직인 것이 아니라 산발적으로 발생한 소규모 릴레이 민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관아를 습격하고 토호들은 거침없이 죽이면서도, 수령들은 욕보이기만 하고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분노가 컸으면서도 나라님이 임명한 수령들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존중심을 갖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배세력들이 느낀 공포는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이번 민란으로 인해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3. 삼정개혁 시도와 결과

 

철종은 재위 기간 안동 김씨 세력에 밀려 힘을 못쓰다가 민란과 같은 국가적 위기를 맞이하여 개혁을 시도했습니다. 그렇게 삼정 개혁을 위해 특별기구를 만들었는데, 그 이름은 '삼정 이정청'이라고 하였습니다.

 

회사로 말하지만, 삼정 개혁 TF, 삼정개혁 프로젝트 같은 기구였습니다. 

 

그런데, 이 삼정 이정청의 멤버들이 바로 삼정을 통해 이득을 취해온 관리들이었으니 문제였습니다. 개혁대상들에게 개혁을 맡겼으니 제대로 프로젝트가 수행되었을 리 없습니다. 

 

그런데도 철종은 나름대로 개혁안을 책자로 만들어 제출하라고 명령하고, 시골 선비들에게도 벼슬을 내리면서 의견을 받는 등 노력을 하였습니다. 

 

3개월이 지나고 민란이 잦아들자 철종은 프로젝트의 결과를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보고된 대책이 혁신적일 리가 없었습니다. 모두 환곡 제도와 같이 부정부패로 얼룩진 제도를 한 번에 없애는 것은 어렵다는 의견이었으니까요. 

 

결국 철종은 다시 연구해 개혁안을 만들어 오라고 지시했지만, 그것으로 흐지부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진주민란의 주모자였던 백낙신은 2년 뒤 사면을 통해 다시 수령으로 복귀했습니다. 

 

철종의 삼정 개혁에 대한 시도와 결과를 보니 씁쓸합니다. 

 

이런 사례는 요즘에도 뉴스를 보면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이권에 개입된 인물을 개혁의 수장으로 앉혀 프로젝트를 말아먹는 일은 지금도 비일비재하고, 큰 잘못을 해서 해임이 되거나 징계를 받은 사람들이 수년 뒤 슬그머니 다시 복귀해서 관직을 다시 맡게 되는 일들도 자주 목격합니다. 

 

철종을 옹호해 주고, 철종이 신뢰할 수 있는 신하들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어떤 개혁을 시도하더라도 철종은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어떤 일이라도 최소한의 지지기반이 있어야 굴러갈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철종의 이러한 시도는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에 세도가들에게 둘러싸여 옴짝달싹 못하는 상태에서도 백성들을 위해 개혁을 추진했다는 것 자체도 큰 용기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4. 하고 싶은 이야기

 

우리나라 역사는 고려시대, 조선시대, 근대사를 보아도 투쟁의 역사들이 많이 보입니다. 여기에서 투쟁은 일반 백성들, 일반 국민들이 권력층에 대한 투쟁을 의미합니다. 

 

우리 민족들이 약간 반골기질이 있는지 무언가 불합리한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 뿌리 깊게 박혀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아래에서 위로의 개혁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죠. 

 

삼정문란에 대한 민란도 땔감과 약초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초군들이 주도했고, 임진왜란 때 민병대의 활약도 그렇습니다. 일제시대 독립운동도 그랬고, 해방 후 독재정치에 맞서는 민주화 운동도 그랬습니다. 

 

비록 조선시대 후기에 밖으로는 쇄국정책을 펴고, 안으로는 부정부패가 깊어져 나라가 망해가는 수순을 밟고 있었지만, 임금은 외척세력에 대항해 보고, 백성은 탐관오리들에게 대항하려는 개혁의 노력을 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겠습니다. 

 

나라를 빼앗겨도 되찾고, 전쟁으로 망해도 다시 일으키고, 독재정권도 무너뜨리고, 이만큼 경제를 발전시킨 것으로 보아 우리 민족은 지도자 계급보다는 대다수를 차지하는 국민들의 종특이 조금 특이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우리 민족의 종특이 가능하면 좋은 방향으로 많이 발현되어 앞으로 닥칠 어려움들을 잘 이겨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리하며, 

 

조선 후기의 역사와 근대사는 잘 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나라가 기울어지거나 외세에 배척받던 시기여서 읽으면 마음이 아프거나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망해가면서도 누군가는 개선하려고 노력을 했고, 아무리 심한 배척을 받아도 누군가는 끊임없이 불의에 맞섰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체념하고 죽은 듯이 지내지는 않았다는 것인데, 이런 힘이 5천 년 동안 망하지 않고 자기 문화를 갖추고 독립적으로 나라를 이루고 살아갈 수 있었던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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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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