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비윤씨에 대하여

역사와 고전

폐비윤씨에 대하여

월리만세 2021. 5. 15.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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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며 : 

 

시간이 날 때마다 읽는 책 중 '박시백의 조선왕조 실록'이 있습니다. 한때 선풍적인 인기가 있어서 세트로 구입하고, 태종이나 세종과 같은 유명한 임금의 이야기만 대강 읽고 방치해 두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연산군 일기'를 읽었는데, 폭군 연산군이 자신에게 거역하는 신하들을 죽이는 장면에서 폐비 윤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연산군의 어머니인데, 사약을 받고 죽었을 때 그 일을 묵인하거나 동조했던 신하들을 모두 죽인 것입니다. 어머니가 사약을 받는데 수수방관한 신하들에게 분노한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되었지만, 그 어머니인 폐비윤씨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습니다. 

 

왜 폐비가 되었는지도 궁금해져서 연산군일기 앞에 있는 성종실록을 읽어보았습니다. 폐비 윤씨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살펴봅시다. 

 

 

1. 성종에 대하여

 

폐비 윤씨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폐비 윤씨의 남편이었던 성종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종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왜 폐서인이 되었는지 이해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성종은 한마디로 '모범군주', '도덕군주'라고 불리울 정도로 조선을 태평성대로 이끌었던 임금입니다. 어렸을 때 부터 하루 3번 경연을 빠짐없이 참석하면서 유교공부에 심취하여 조선을 유교중심국가로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경국대전 편찬을 완료하여 법치국가의 틀을 잡고, 홍문관, 사헌부, 사간원을 통해 언론을 활성화시켜 대신들의 독주를 막고, 활발한 토론을 통해 정치를 했던 인물입니다. 

 

한마디로, 조선의 임금들 중에서 매우 규범준수에 민감한 왕이었습니다. 세종대왕과 비교가 될 정도로 통치를 잘했지만, 세종대왕이 문무, 과학기술을 고르게 발전시킨 반면 성종은 '문'에 치중한 통치를 했다는 것이 차이입니다.

 

성종은 본인이 서열 3번째였으나 대왕대비와 훈구대신들의 힘으로 왕이된 만큼 매우 행동을 조심했고, 본인이 힘을 갖출 때까지 인내하고 참아 권력을 확보한 왕입니다. 

 

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했던 6년간의 시간을 견디고 정치력을 인정 받았으며, 훈구대신들의 힘이 점차 약화되기를 끈기있게 기다리면서, 언론기관을 활성화시켜 대신들의 독주를 막으며 힘을 키웠습니다. 

 

한마디로, 상황판단을 현명하게 했고, 본인 소신이 있었으며, 기다릴 줄 아는 왕이었습니다. 그렇게 친정을 시작하면서, 25년간 훌륭하게 조선을 다스리다가 38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38세에 세상을 떠나다니 정말 젊은 나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짧은 인생에도 불구하고 대가족을 이루었습니다. 성종은 부인 12명, 자녀 16남 12녀를 이루었습니다. 자녀의 수가 무려 28명이었습니다. 

 

이제 성종의 부인이었던 폐비 윤씨에 대해 이야기를 해 봅시다. 

 

 

2. 폐비 윤씨에 대하여

 

원래 성종의 부인은 한명회의 딸 공혜왕후였습니다. 그러나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되어 중전자리가 공석으로 남게 됩니다. 

 

폐비 윤씨는 수많은 성종의 후궁 중 한명이었습니다. 

 

성종은 즉위 후 4년차에 대왕대비의 명에 따라 윤기견의 딸과 윤호의 딸을 후궁으로 들였습니다. 여기서 윤기년의 딸이 바로 폐비 윤씨입니다. 당시 나이는 27세였습니다. 

 

나이 때문인지, 윤기견의 딸은 몇 개월 후 숙의로 봉해져 윤 숙의라고 불리게 됩니다. 윤 숙의는 중전이었던 한명회의 딸이 죽자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야심이 많았던 인물로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평소 윤 숙의는 검소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하여 성종과 대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연산군까지 임신하자 대왕대비가 고민한 끝에 중전으로 간택하게 됩니다. 이때가 성종 7년입니다. 

 

결국 폐비 윤씨는 후궁으로 들어온지 3년만에 조선의 국모가 되었습니다. 더구나 4개월 뒤 연산군을 낳았으니 여자인생으로 치면 엄청난 인생역전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끈기있게 참으면서 본인의 힘을 키웠던 성종과 달리 연산군을 낳고 폐비 윤씨는 태도가 돌변하게 됩니다. 너무나 큰 성공에 그만 본인의 권력을 맹신하게 되었었던 것 같습니다.

 

성종이 총애하는 후궁들을 저주하는 책을 소지하기도 하고, 독약인 비상을 가지고 있다가 들키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성종이 아끼는 후궁집에 세자를 해치려 한다는 투서를 던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후, 성종이 다른 후궁의 처소에 있는데 갑자기 쳐들어 오기도 하고, 성종을 노려보고, 주상의 발자취를 모두 깎아 버리고 싶다는 이야기까지 하니 성종과 대비들은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성종이 후궁과 자녀가 많았기 때문에 어느정도 질투는 있었을 테지만 그 정도가 매우 심했던 것 같습니다. 

 

이에 성종과 대비들은 혹여 음식에 독약을 타서 성종을 죽이고, 아들인 연산군을 끼고 왕권을 넘보게 될까 염려하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는 그럴법도 할 듯 합니다. 

 

그래서, 결국 성종은 윤 숙의를 폐비시켜 사저로 쫒아 버립니다.  성종은 흔히 말하는 모범군주이고, 규범을 준주하는데 탁월한 임금인데 이렇게 조치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을 것입니다. 

 

 

3. 폐비 윤씨가 죽게 된 이유

 

사실 폐비가 되었다고 하지만 굳이 죽을 이유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윤 숙의는 사약을 받고 죽게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조선은 견실한 왕권국가였기 때문에 임금과 의견이 어긋나게 되면 삼족을 멸하게 되거나, 쉽게 죽음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윤 숙의는 폐비가 된 이후에도 끊임없이 복수의 칼날을 갈았던 것 같습니다. 

 

신하들은 폐비 윤씨에 대해 불안해 했습니다. 

 

나중에 연산군이 왕이 되면, 당연히 복귀할 것이고 그 때 본인들이 복수를 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예측일 것입니다. 

 

성종도 폐비 윤씨에 대해 불안해 했습니다. 

 

얌전히 반성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야심을 버리지 않고 권력을 지향하고 있었으니, 왕권이 훼손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종은 폐비 윤씨를 사사하기로 결정하고, 사약을 내립니다. 

 

폐비 윤씨가 죽고, 7년이 지난후 성종은 '윤씨지묘'라고 호칭을 정하고 절기마다 제사를 지내도록 명령하고, 이후 이 결정에 대해 손대지 말라는 지시를 하고 폐비윤씨 사건은 종결됩니다. 

 

폐비 윤씨는 생각해 보면 안타까운 인생을 보냈습니다. 

 

성종은 불과 38세에 세상을 떠나는 운명이었습니다. 더구나, 폐비 윤씨는 어릴때부터 어렵게 자라 검소하고 예절을 지키면서 본인의 야심을 잘 숨기고 살아왔습니다.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렸다면, 본인이 원하는 실질적인 권력을 손에 쥘 수 있었는데,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린 어설픈 야심가였습니다. 

 

처음 갖게된 중전이라는 타이틀이 너무나 크게 다가와 주체를 할 수 없었던 같습니다. 갑자기 졸부가 된 사람들이 경제력을 주체못해 여기저기 흥청망청 쓰다가 망해버리는 경우랑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4. 하고 싶은 이야기

 

폐비 윤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성종과 대비들에게 검소하고 예절바르다고 평가받으면서 중전으로 발탁될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야심을 숨기고 있었을 텐데, 너무 일찍 본색을 드려냈습니다. 

 

원자를 낳았음에도 후궁들을 음해하려고 했다면, 질투심이 상당했던 것 같은데 남편이었던 성종의 성격을 잘못 파악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성종은 그야말로 FM대로 성장해온 모범군주인데 그런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다니 중전이라는 지위를 너무 맹신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성실하고 우수한 실적을 내면서 성장한 인물이 임원으로 발탁되면서 본인 성공에 도취되어 직원을 함부로 다루다가 회사에서 쫒겨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권력이란 그런 속성이 있나 봅니다. 저도 작은 성공이라고 하게되면 그 느낌에 취해 어쩔 줄 모르던 기억이 납니다. 폐비 윤씨의 이야기는 바로 작은 성공에 너무 취해 이후 인생을 망가뜨리게 되는 경우를 경계하게 해 줍니다. 

 

한 나라의 국모의 자리까지 올랐다가 폐위되고, 심지어 사약을 받고 죽게되는 인생을 살다니 파란만장합니다. 지금 상황과 비교를 하자면, 어려운 현실을 딪고 노력해서 대통령 영부인이 된 후, 과도한 권력을 휘두르다가 이혼을 당하고, 감옥에 가게되는 경우와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권력, 성공 등에 도취되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며, 

 

조선왕조실록은 대단한 역사기록물입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정도니 당연히 훌륭한 유산이긴한데, 이렇게 자세하게 한 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사례는 전세계적으로 없었다고 하니 읽어볼수록 대단합니다.

 

예전부터 이렇게 자세한 기록을 남기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역사를 잊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합니다. 역사의식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유가 이처럼 과거를 잘 알 수 있는 기록물이 발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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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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