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주인공 : 조선 22대 정조대왕에 대하여

역사와 고전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주인공 : 조선 22대 정조대왕에 대하여

월리만세 2021. 7. 10. 16:10
반응형

 

| 들어가며 : 

 

새벽에 일어나서 박시백의 조선왕조 실록에서 정조실록을 읽었습니다. 딱히 정조실록을 고른 것은 아니고, 책꽂이 위에 보여서 문득 집어 들었을 뿐입니다. 

 

정조는 조선왕조 중에서 세종대왕과 함께 대왕이란 호칭을 사용합니다. 그 만큼 훌륭한 임금이었다는 뜻이겠죠. 정조실록이 읽고 싶었던 이유는 왜 정조가 대왕이라고 불리는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측면에서 정조를 대왕이라고 부르게 되었는지 읽어 보면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조대왕은 25세에 왕위에 올라 25년간 통치를 하다가 50세에 심한 종기로 인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드라마 중에 이산이란 드라마가 바로 정조대왕을 주인공으로 한 픽션인데 이서진이 주연을 했습니다. 아마도 이산 드라마를 보셨던 분들이라면 모두 정조대왕을 어느정도는 알고 계실 듯합니다.  

 

 

1. 정조대왕의 비극적인 어린시절

 

정조대왕처럼 어린 시절 끔찍한 기억을 가지고 평생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힘들 것 같습니다. 정조대왕은 11살(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할아버지인 영조의 손에 죽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자기 아버지를 작은 뒤주에 가두고 굶겨 죽이는 것을 초등학교 4학년 때 직접 본 것입니다. 영화에서 나온다면 엄청난 트라우마를 갖게 될 사건인데, 정조대왕은 이런 끔찍한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왕위에 오릅니다. 

 

영조가 둘째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일 때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원래 죄인의 아들은 왕위에 오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세자에게 죄를 물어 벌을 주거나 사약을 내린다면, 정조에게 왕위를 물려줄 수 없게 됩니다. 

 

때문에, 영조는 죽어 마땅한 죄를 지은 사도세자에게 직접적으로 벌을 내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온 묘안이 바로 굶겨 죽이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조선시대 법도 때문에 나온 무서운 형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영화 '사도'를 보면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송강호가 영조를 연기하고, 유아인이 사도세자를 주연으로 맡아서 연기를 했습니다. 더운 여름날 작은 뒤주에 갇혀 죽어가는 유아인의 연기를 보면서 그 당시 사도세자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죽어갔을지 상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멀리서 지켜보았던 아들 정조의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할아버지인 영조가 정말 무서웠을 것입니다. 자기 아들까지 죽인 절대군주가 11살짜리 세손을 죽이는 것은 더 쉬웠을 테니까요. 

 

그래서, 정조는 어린 시절부터 늘 두려운 마음에 살아남기 위해 모범적인 생활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항상 반듯한 자세를 유지하고, 학문에 열중했고, 할아버지인 영조에게 지극한 효심을 보였습니다.

 

이에 영조도 정조가 즉위할 때까지 힘을 실어주었고, 제왕이 되기 위한 훈련을 시켜주었던 것 같습니다. 영조는 정조를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을 시켰는데, 아마도 정조가 왕이 될 때 모양새를 맞춰주기 위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효장세자는 영조의 첫째 아들입니다. 사도세자는 영조의 둘째 아들입니다. 결국 정조는 영조의 명령에 따라 큰아버지의 아들로 들어가게 됩니다. 

 

좀 더 무리 없이 왕위를 계승해 주기 위한 영조의 생각이었겠지만, 정조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참 어린 시절 행복하지 않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삐뚤어지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여 모든 신하들이 인정하는 뛰어난 경지에 까지 올랐으니 정조의 품성은 원래 단단한 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2. 정조대왕의 업적

 

정조실록을 읽으면서 느낀 것인데, 정조가 대왕이라고 불린 이유는 바로 백성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애민군주였기 때문에 대왕의 호칭을 받았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정조대왕은 본인 자신이 학문적으로 완성된 군주였기 때문에 규장각을 설치하고, 당파 구분 없이 관원을 뽑아 학문을 널리 전파하도록 했습니다. 정조는 규장각을 통해 당색에 물들지 않은 관료를 길러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의 정치적인 이념은 조선 초기 사대부 정치를 부흥하는 것이었습니다. 조선 중기 이후 계속된 당파싸움으로 제대로 된 정치체계를 갖추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가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한 것도 이러한 당파싸움을 없애기 위해서인데, 당시에는 노론 시파와 노론 벽파가 대표적인 파벌이었습니다. 이 중에서 시파는 왕의 정책에 동조하는 그룹을 의미하고, 벽파는 왕의 정책에 반대하는 그룹을 의미합니다. 

 

보통 왕에게 반대하는 그룹은 이런저런 이유로 모두 죽이기 마련인데, 정조는 함께 설득시켜 가면서 이끌어야 할 대상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남인과 소론 출신도 두루두루 등용을 했으니 나름 본인만의 통치철학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금난전권을 철폐했는데, 금난전권은 난전을 금하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당시 조정의 육의전에 물건을 대는 상점은 같은 물품을 팔지 못하도록 독점권을 인정했던 것이 바로 금난전권이었습니다. 

 

이 제도를 없애버림으로써 상권에 건전한 경쟁이 발생했고, 납품 물자를 가지고 생기는 부정부패도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정조는 천주교로 대표되는 서학에 대해 비교적 유연한 정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미 중국에는 서양의 문물들이 많이 들어와 있었고, 그중 천주교가 조선으로 유입되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정조는 워낙 유학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이미 조선에는 중국으로부터 도교 등 소규모 학문이 전해져 왔기 때문에 서학으로 알려진 천주교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를 해 주었습니다. 

 

정조는 수원 화성을 건축하고, 궁궐 수비대인 장영용을 만들었습니다. 화성은 정약용이 만든 거중기를 활용해 매우 스피드 있게 올린 성으로 유명합니다. 

 

역사에 따르면 수원 화성은 나중에 정조가 왕위를 물려주고 본인이 머물기 위해지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영용 역시 수원을 중심으로 본인이 화성에 머물 때 궁궐 수비를 위해 만들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정조는 역대 조선의 임금들 중에서 매우 기품 있고, 바른 통치철학을 가진 군주였습니다. 25년간 재위를 하면서 조선에 다양한 혁신제도를 만들면서 백성을 다스렸는데, 좀 더 오래 통치를 했다면 조선의 후반기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사실상 정조대왕은 조선 후기에 마지막 임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정조 이후부터 급속도로 조선의 국력이 쇠약해졌기 때문입니다. 

 

어린 임금들의 등장으로 세도정치가 시작되고, 백성보다는 본인들의 권력만을 위한 정치인들이 득세를 하여 결국 외세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 조선은 멸망의 길로 들어섰으니까요.  

 

 

 

3. 정조대왕 시대가 아쉬웠던 점

 

정조대왕은 1776년부터 1800년까지 25년간 왕위에 있었습니다.

 

세계적으로 보면 이 시기가 정말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이 기간 중에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시작되었고, 1776년 미국은 독립전쟁에서 승리를 해서 국가 자립을 했습니다. 

 

1789년에는 프랑스혁명이 일어났고, 그 시기 중국은 건륭제의 시대로 60년 재위 기간 중에 태평천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당시 북경은 이미 서양의 상인들과 선교사들이 넘쳐났을 정도로 글로벌화되어 있었습니다. 

 

정조대왕이 비록 다른 임금들에 비해 혁신적인 제도를 도입해 백성들을 평안하게 이끌었던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이미 중국은 서양문물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있었고, 미국, 영국, 프랑스는 산업화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정조대왕의 시기를 안타까워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우리도 이때 서양의 국가들과 함께 나름대로의 산업화를 이룰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당시 정조대왕이 서양의 이러한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면, 흥선 대원군처럼 쇄국 정책을 폈을지 쿨하게 받아들여 좀 더 빠르게 조선을 혁신했을지 궁금합니다. 

 

정조대왕은 말년에 약 5년간 종기로 고생을 하다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실록에 보면 하루 종일 엄청난 양의 피고름을 짜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몸에 종기와 같은 염증이 있으면 열도 오르고 욱신욱신 쑤셔서 아무 일도 못했을 텐데 안타깝습니다. 

 

정조대왕이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일에 너무 매달리지 말고 백성을 좀 더 열심히 돌보았다면 좀 더 나은 시대가 열렸을 것입니다. 조선 말기에 가장 백성을 괴롭혔던 환곡 제도라도 정조대왕이 확실하게 개선해 놓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환곡은 빈궁기에 백성들에게 곡식을 빌려주고, 나중에 다시 갚은 복지제도였지만, 당시에 관리들은 본인 잇속을 위해 쭉쟁이 곡식을 빌려주고 양곡으로 받아 이득을 취하고, 혹은 곡식을 빌릴 필요도 없는 백성들에게조차 강제로 곡식을 빌려주어 이자를 받아 챙기는 등의 악행이 만연했습니다. 

 

조선 말기에 일어날 안타까운 일들을 생각해 보면, 마지막으로 미리 막을 수 있었던 시기가 바로 정조대왕 시대가 아니었나 합니다. 왜냐하면, 정조 이후의 왕들은 거의 왕으로서의 힘을 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사책을 보면 정조대왕의 시대를 아쉬워하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4. 하고 싶은 이야기

 

역사는 언제나 반복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늘 조선왕조실록을 볼 때면 놀라운 점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상세하게 기록을 해서 그 당시의 정치, 사회, 문화에 대해서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남겨두었는지 말입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기록물일 것입니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여러 파벌들이 논리싸움을 했고, 최고 권력을 잡았던 사람이 어처구니없이 실각하여 쫓겨나기도 했으며, 그러한 와중에도 자기의 신념을 지키면서 자기만의 목소리를 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최고 통수권자였던 임금의 마음을 잘못 읽어 죽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였고, 왕 조차 다음 후계를 계승하고 난 뒤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조선의 역사를 보다 보면 정말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우리나라에는 3개의 축이 늘 싸우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왕과 지지층인데, 지금으로 치면 청와대쯤 되지 않을까 합니다. 두 번째는 당파 싸움을 하는 신하들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여당과 야당들이 아닐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백성입니다. 지금의 우리 국민들이죠. 

 

조선왕조 500년간 이렇게 세 축은 늘 견제를 하고 사건사고를 일으키면서 싸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인 듯한데, 놀라운 것은 그러면서도 우리나라는 최악으로 치닫지 않고 성장해왔다는 것입니다. 

 

조선말 국력을 회복하지 못해 한시적으로 나라를 잃었지만, 엄청난 응집력으로 나라를 되찾았고, 바로 전쟁이 일어나 폭싹 나라가 망했지만, 또 짧은 시간에 망가진 나라를 회복시켰습니다. 

 

조선왕조 실록을 보면 전쟁도 많이 치렀고, 멍청한 임금 때문에 폭정에 시달려도 보고, 부정부패로 고생도 해 보았지만, 누군가는 이런 부조리를 바로잡아보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것이 마치 공식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평소에 서로 헐뜯고 다투다가 어떤 국가적인 어려움이 닥칠 때 단결하여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정말 긴 역사가 우리들에게 새겨놓은 종족 특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특징이 DNA에 존재했을 리는 없겠지만, 수차례 반복되면서 사람들의 기억에 오랫동안 새겨져 왔고 모두 기억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정리하며, 

 

정조대왕은 조선 후기의 마지막으로 만날 수 있는 훌륭한 군주입니다. 어린 시절 끔찍한 경험을 했음에도 바르게 성장해서 나라를 훌륭하게 이끈 임금이 되었다니 태어날 때부터 왕이 될 운명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나라의 국력을 강하게 떨쳤던 군주를 생각할 때 광개토대왕을 떠올립니다. 아직 대한민국 역사에는 이처럼 우리 국력을 글로벌하게 높여준 대통령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런 통치자는 한반도가 통일돼서, 최소 조선시대 수준의 영토를 회복한 후에 국민들이 합심해 국력을 끝까지 밀어 올리는 와중에 등장하지 않을까 합니다.   

 

구매하실 생각이 있으시면, 참고해 주세요.

(파트너스 활동을 통해 일정 수수료를 제공받을 수 있음)

 

◇ 박시백 조선왕조실록 : 가격확인

◇ 박시백 조선왕조실톡 : 가격확인

◇ 박시백 조선왕조인물 : 가격확인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임오군란에 대하여 : 역사적 의미와 결과
갑신정변에 대하여 : 역사적 의미와 결과
흥선대원군의 업적에 대하여
조대비 : 흥선대원군과 함께한 개혁정치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에 대하여
폐비 윤씨에 대하여
플라톤의 이데아와 동굴의 비유에 대하여
플라톤이 생각한 이상적인 국가에 대하여
헌종 가계도와 헌종 죽음
철종 가계도와 철종 죽음
철종시대의 삼정문란에 대하여
빅터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독후감
유튜버 신사임당 주언규의 킵고잉 요약
디지털노마드 파이프라인 우화에 대하여
친절한 효자손 구글애드센스 고수익자 되기
국민연금 같은 부수입 구글애드센스 돈벌기
롯본기 김교수의 굿바이 일본에 대하여
초보자도 할 수 있는 글쓰기로 부업하라
프리랜서 독립일기 회사체질이 아니라서요
대학생 독후감 모음 vol1 : 고전 철학
리디셀렉트 100% 활용하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