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국영의 성공과 최후

역사와 고전

홍국영의 성공과 최후

월리만세 2021. 7. 11.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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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며 : 

 

우연히 정조실록을 읽게 되었습니다. 정조실록 중간에 홍국영이란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홍국영이란 이름이 낯익어서 검색을 해 보니 예전에 홍국영에 대한 40부작 드라마가 방송된 적이 있었습니다.

 

드라마에서 나왔던 인물이라 제 머리속에 이름만 어렴풋이 남아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인지 구체적으로 몰랐지만, 정조실록을 통해 알게 된 내용만 비추어 본다면 홍국영은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다 간 풍운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1748년에 태어나서 1781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33세의 젊은 나이에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영조 시대에 문과로 급제한 나이가 29세였습니다. 그러니까, 관직을 얻어 정치에 입문한지 14년만에 죽은 것인데, 제가 볼 때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29세에 원하던 회사에 입사해서 폭풍처럼 일하다가 14년만에 죽은 직장인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홍국영이 살다간 조선시대의 삶은 현실과 매우 달랐습니다. 이제부터 홍국영이 구체적으로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1. 홍국영의 성공 스토리

 

홍국영은 영조 46년 문과에 급제하여 동궁전에 부임하여 정조를 처음 만나게 됩니다. 정조대왕이 1752년에 태어났으니 홍국영과 불과 4살 차이였습니다.

 

정조대왕도 홍국영과 마음이 잘 맞았는지 친구처럼 지냈고, 홍국영에게 조정의 정보를 모으는 역할과 본인의 경호실장을 맡겼을 정도로 신임했습니다.  

 

당시 정조에게는 노론 벽파가 임금이 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노론 벽파는 정조의 즉위에 반대하는 무리들이었는데, 홍국영은 노론 벽파를 제거하여 정조가 즉위를 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일등공신입니다.  

 

여기까지 내용을 보면, 홍국영은 29세에 처음 정치에 입문해서 우연히 만난 세자를 도와 그가 최고의 권력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 일등공신이 된 것인데, 얼마나 짜릿했을까요? 홍국영 입장에서는 엄청난 성공경험일 것입니다. 

 

홍국영은 정조가 즉위하고 도승지로 임명되는데, 즉위년에 임명된 후 바뀌지 않아 어느 순간 정조시대 도승지는 바로 홍국영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도승지라는 역할은 지금으로치면 대통령 경호실장입니다. 홍국영은 수어사를 거쳐 숙위 대장, 훈련대장을 맡았고, 선혜청 제조 대감까지 담당했기 때문에 군사부문과 함께 재정부문도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대통령 경호실장을 오랫동안 하다보니, 왕에게 전달하는 모든 의견과 상소를 본인이 검토했고, 임금에게 연결되는 정보의 흐름이 홍국영에게 집중되자 군신들이 홍국영에게 줄을 서게 되어 대부분의 병권을 홍국영이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홍국영은 이렇게 갖춘 군사력으로 정조가 초반에 시행했던 척신숙청 작업을 도왔으니, 정조와 홍국영은 정말 찰떡궁합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홍국영에 대한 정조의 신임은 대단했다고 합니다.  

 

왕이 절대적으로 믿어주고, 왕에게 가는 모든 정보를 틀어쥐고 있었다면 홍국영을 위태롭게 하는 세력도 없고 인생을 승승장구 했을 텐데, 홍국영이 여기서 만족하지 않은 것이 패착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젊은 나이에 그렇게 큰 권력을 얻게 되고, 중요한 국가적인 거사를 수차례 성공적으로 이루다 보니 세상일이 모두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졌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그 권력을 갖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2. 홍국영의 몰락

 

홍국영이 처음 임용되었던 것처럼 재상으로 남았다면, 죽을 때까지 그를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을 텐데 홍국영은 자신의 권력을 영원히 누리려고 하다가 점차 몰락합니다. 

 

홍국영이 정조를 대신해 척신세력을 제거하자 반대파가 생겼는데, 이런 반대파를 방어하고자 홍국영은 반대파의 맞상대였던 김종수 세력과 손을 잡고, 궁에서 본인의 입지를 넓히고자 재야에 명성이 높았던 송시열의 후손이었던 송덕상을 불러들입니다. 

 

여기까지 본인 세력을 단단하게 구축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홍국영은 결정적으로 손대지 말아야 할 영역까지 침범하고 맙니다.  

 

정조는 결혼한지 16년이 되도록 후사가 없었는데, 홍국영은 자기의 누이를 정조의 빈으로 들여 보내고, 누이가 아들을 낳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국, 홍국영은 현재 권력에 만족을 하지 못하고, 스스로 임금의 외척세력이 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홍국영의 누이는 빈으로 간택되고 1년 만에 세상을 떠나 왕의 외척이 되려고 했던 홍국영의 꿈은 무너지게 됩니다. 하지만, 홍국영은 그 이후에도 다시한번 큰 잘못된 행동을 합니다.

 

정조가 다시 빈을 간택하려고 하자 이에 결사반대를 했던 것입니다. 사도세자의 첫번째 아들인 은언군의 자식이었던 상계군을 자기 누이의 양자로 들입니다. 그리고, 그를 세자로 만들려고 합니다.

 

은언군은 정조대왕의 형입니다. 상계군은 정조의 조카였던 것이죠.  

 

이런 홍국영이 정조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요? 아마도 본인이 제일 믿고 의지하던 신하가 자기 조카를 내세워 자신을 몰아내고 임금의 권력을 차지하려는 것으로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한마디로, 홍국영은 본인 권력에 도취되어 정조대왕을 저고리 핫바지로 본 것입니다. 그런 짓을 인정할 임금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한마디로 홍국영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던 것입니다.  

 

 

3. 홍국영의 최후

 

정조대왕은 조선의 임금 중에서 문무를 겸비한 절대군주 중의 한 사람입니다.

 

화살을 당겨 50발 중 49발을 명중시켰고, 어렸을 때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후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모범생으로서 공부만 하고 살아온 처지라 그 학문의 경지도 신하들보다 높았습니다.

 

아버지가 죄인이었다는 정치적인 약점을 극복하고 왕이 된 후에도 반대파까지 아우르며 탕평정치를 펼쳤던 정조는 정치적인 역량도 뛰어났는데, 홍국영은 너무 드러내 놓고 정조대왕을 무시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조는 마지막까지 홍국영에게 예의를 갖추었습니다. 그를 불러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고,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나도록 설득합니다. 

 

홍국영 본인도 뜨끔했는지, 스스로 정조에게 이별을 고하고 궁궐을 떠납니다. 이러자 신하들은 갈피를 못잡게 됩니다. 이것이 정치적인 쇼인지 혼란스러웠던 것이죠. 그래서, 홍국영을 두둔하는 상소를 올리고 그의 구명활동을 합니다. 

 

하지만, 정조가 이에 반응이 없자 왕의 의도를 눈치챈 신하들이 벌떼처럼 홍국영의 처벌을 요구하고, 정조는 마지못해 이를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합니다. 

 

이렇게 홍국영은 정조 3년에 관직을 내려 놓고, 정조 5년인 33세의 나이로 강릉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바위도 씹어먹을 30대 초반에 죽다니 정말 바람같은 인생이었습니다. 홍국영은 정조가 즉위하고 3년간 조선시대 신하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권력을 경험했을 것 같습니다. 날아가는 새도 손가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강릉으로 유배 갔던 것을 억울해 했을까요? 유배지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2년 만에 세상을 떠난 것을 보니 자신의 신세를 너무 억울해했던 것 같습니다. 

 

 

4. 하고 싶은 이야기

 

홍국영의 짧은 인생을 보면서 인간의 욕심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봅니다. 

 

지금의 세상을 생각해 보면, 사람은 태어나서 3가지 화두를 놓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성공, 부자, 행복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중에서 '부자'라는 것은 '권력'과 같은 의미로 해석해도 좋을 듯합니다. 

 

이 세가지 화두는 묘하게 연결된 듯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홍국영은 자신이 정조대왕을 통해 정치적으로 성공했고, 그에 어울리는 권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 권력에 따라서 경제적인 이득도 상당히 확보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홍국영은 그것이 바로 '인생의 행복'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행복을 영원히 지속되도록 만들려고 하다가 그만 순식간에 세상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인생은 부질없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대부분 인생의 목표를 부자나 권력을 잡기 위해 평생 애쓰다가 허무해졌을 때 쓰는 표현이 아닌가 합니다. 

 

홍국영의 삶을 보면 성공하고, 권력을 얻어 부자가 되는 것이 반드시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가 왜 몰락했는지 생각해 보면 그것은 '욕심' 때문입니다.  

 

그 순간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것을 원하다가 망한 것입니다. 홍국영 입장에서는 자기 정도면 더 큰 것을 원해도 된다고 생각했을 수 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제가 지금 홍국영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됩니다. 

 

저는 회사를 20년 째 다니고 있는 직장인입니다. 결혼할 나이가 되어 결혼을 했고, 아이도 바로 다음 해에 태어나 건강하게 잘 키우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처럼 남은 회사생활은 집 대출금을 갚고, 자녀 교육비로 허덕대다가 퇴직할 것 같습니다. 

 

늘 풍족한 경제적인 생활을 할 수 없어 불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기 때문에 저 스스로 좀 더 많은 것을 원해도 당연하다고 여길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마치 홍국영처럼 현재 순간에 만족하지 못하고 과도한 욕심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태어나서 큰 사고 없이 잘 성장해서 대학교 졸업하고, 회사에 입사를 했고, 결혼해서 예쁜 딸을 낳아 잘 키우고 있는데 행복하지 않을 리 없습니다. 와이프와 사이도 좋고, 이 상태로 쭉 인생이 진행된다면 부자는 아니지만, 빈곤하지도 않은 노후를 맞이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가끔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것이 불만이긴 하지만, 홍국영을 생각해 보면 제가 무리한 욕심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반성을 하게 됩니다. 스스로 행복한 줄 알아야 하는데 말이죠. 

 

 


 

정리하며, 

 

조선왕조실록에는 임금들의 이야기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신하들의 인생 이야기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모든 정신적인 문제와 사회문제가 조선시대에도 똑같이 있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역사는 현재 내 생활을 비추어 보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홍국영 덕분에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말고, 현재 생활에 한번 만족을 느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래전에 구입해 두고 방구석에 쌓아 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한 권씩 다시 읽고 있는데, 두번째 읽다 보니 새롭게 배우는 것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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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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